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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傷痕]

 

하늘을 나는 검은 새와 진고개를 지키는 개는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일상 속에 위험함이 있다.

 

 

햇볕이 따사로이 진고개에 내려앉았으나 동매의 곁은 그렇지 못했다. 거사를 나간 애신은 벌써 며칠째 소식도 하나 없이 동매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 물론 ‘보름에 돌아오겠네’라는 말을 남기긴 하였지만, 그 보름이란 게 애신과 있을 때와는 다르게 아주아주 더디게 다가왔다.

 

그 보름을 기다리는 동매의 나날은 그리 평안하지 못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허전한 자신의 옆자리를 보아야 했고 조찬을 먹을 때에도 중반을 먹을 때에도 애기씨가 끼니는 잘 챙기시고 계신가.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한잔 걸칠 때는 다친 곳은 없을까 걱정되었다. 빨리 오셨음 하다가도 다 좋으니 다치지만은 않고 돌아오셨음 하면서 몸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그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잠을 청하지도 못한 채 지내다 보니 하루하루 수척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오야붕의 기분이 안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진고개의 분위기도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괜히 지나다니다 오야붕의 눈에 거슬렸다가는 자신의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으니.

 

달이 조금씩 차오르고 차올라 드디어 기울어질 때까지 차오르는 날이 왔다. 보름에 오시겠다 하였지 새벽에 올지 밤늦게 올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았기에 동매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정확히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전날 밤부터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기차를 타고 오시려나. 기차역에 마중을 나가야 할까. 산을 넘어오시려나. 뒷산으로 산책을 나갈까. 혹시나 동매가 몰래 따라올까 애신은 거사를 하는 장소를 절대로 동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동매도 차마 자신이 절대로 가지 않겠다 말할 수 없어서 불만스러움에도 그저 툴툴대는 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시라도 더 빨리 보고 싶어 하오리와 기모노를 챙겨 입고는 마중을 나갈까 하다가도 괜히 그러다가 엇갈리기라도 한다면 하며 다시 다다미방에 곱게 앉았다.

 

아침 해가 환히 떠올랐다. 평소에는 빨리 져버렸으면 하던 해도 오늘은 반갑게만 다가왔다.

 

“親分”

오야붕

 

문 너머로 유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하자 문이 열리자 유조가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여전히 동매의 시선은 바깥의 떠오르는 해에 향해있었다. 저 해가 저물기 전에는 오시겠지.

 

“제물포에서의 일이 잘 끝났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웠는지 보수까지 더 높게 쳐주었습니다.”

 

애기씨가 오는 날이라서 일이 잘 풀리나 봅니다. 동매의 입꼬리가 슬쩍 휘었다.

 

중반이 지나도 석식이 지나 해가 이미 사라졌는데도 애신은 오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한 동매는 밖으로 나왔다. 어디부터 찾아야 하나 주위를 서성거리니 하늘은 컴컴했고 둥그런 보름달이 환히 떠 있었다.

 

“오늘 오신다더니”

 

해가 일렁일렁 더욱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가는데. 무슨 일이 생기 신 걸까. 불안함에 손이 자동으로 허리춤의 칼을 매만졌다.

 

‘탁’

 

언제는 어디로든 들어오라고, 오시는 게 보일까 열어두었던 방의 창문이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위층을 바라보니 헛소리를 들은 게 아닌지 창이 닫혀있었다. 창에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마치 자신을 놀리는 듯하였다. 생각할 새도 없이 쿵쾅대며 2층에 올라서 문을 열어젖혔다.

 

“왔는가”

 

검은 정장을 입은 애신이 환히 웃으며 동매를 바라보았다.

 

“...누가보면 제가 어딜 다녀온 줄 알겠습니다.”

 

동매는 성큼성큼 애신의 앞에 걸어가서는 머리, 눈, 코, 입으로 시작해서 목을 지나 아래로 훑어내렸다. 언제나 애신이 거사를 나갔다오면 동매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오늘도 다친 곳이 없는듯하여 안심하려던 동매는 애신의 왼쪽 소맷자락에 다 지워져 가는 핏자국을 보았다.

 

“다치셨습니까”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바로 자세를 낮춰 애신의 왼손을 조심스레 잡고는 소매를 올렸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네, 그저 긁힌 것뿐이야.”

“이게 어찌 그저 긁힌 상처입니까.”

 

으르렁거리는 듯한 갈린 목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희고 얇은 손목 위에 칼로 벤듯한 자국이 나 있었다. 얕게 베여 크지 않은 상처였지만 동매에게는 결코 가볍지않았다.

 

“일단 앉으시지요. 치료를 해야 하니”

 

일그러지듯 한 동매의 얼굴에 애신이 뭐라 입을 떼려 했지만 동매는 급히 옆방으로 여러 약과 깨끗한 천을 가지러 갔다. 애신은 그저 자리에 앉았고 동매는 금세 약과 천을 챙겨 왔다. 길게 베인 상처가 다시 봐도 여전히 아려왔다. 쓸 일이 없길 바랐던 귀한 연고를 상처 위에 발랐다. 상처 위에 약을 바르자 애신의 고운 미간이 살풋 찌푸려지며 움찔대었다. 그에 동매의 손길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화난 기색이 역력한데도 이리 아껴주는 모습을 보니 애신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맺혔다. 상처에 약을 다 바르자 깨끗한 천을 상처에 대고 천천히 감았다. 혹시나 아프실까봐.

 

“어떤 새끼가 이랬습니까.”

 

애신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동매가 애신과 눈을 마주쳤다. 동매가 애신의 손을 치료하느라 몸을 굽히고 있어 애신이 동매를 내려다 보는듯한 구조였다. 애신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빛에 젖어 들어가는 슬픔과 그만큼 거대한 분노를 보았다. 애신은 오른손으로 가벼이 동매의 볼을 쓸었다.

 

“이미 내가 배로 복수해주고 왔소.”

 

애신의 손목을 벤 자는 이미 애신의 총에 목숨이 사라졌다. 그 뜻을 알아차린 동매는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손을 어루만졌다.

 

“화났는가.”

 

여즉 굳어진 동매의 얼굴에 애신은 미안했다. 안 그래도 애신이 이 일을 하는 것을 맘에 안들어하는 동매였기에.

 

“제가 어찌 애기씨께 화를 내겠습니까.”

 

감히, 동매가 애신에게 화를 낼수있겠는가. 그저 괜찮을거라 안일했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거사 장소를 안알려주는 애신에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대답을 받아냈어야 했는데, 몰래라도 뒤를 따라 갔어야했는데.

 

“그런 표정 짓지 말게. 내 앞으로는 더 조심할 터이니.”

“..제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자책하는 표정.”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이리 자책하고 슬퍼하는 표정을 보니 미안했다. 그리고 이리 슬퍼하는 것을 보아도 원하는 말을 못해주어서 더욱 미안했다. 이 일은 이미 애신의 삶이 되어버렸으니.

 

“미안하네, 이리 또 걱정 끼치게 하여.”

“미안해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은 새를 사랑하려면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지요.”

 

이리 달콤히 고백해오는 말에 어찌 웃음이 안날까. 애신은 베싯 웃고는 동매의 볼을 쓰다듬던 손으로 동매의 고개를 들게하고는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애신의 행동에 동매의 몸이 굳어졌다.

 

“그럼 잘 버텨주어 고맙다고 상을 주는 것이 내 역할인가.”

 

놀라 딱딱히 굳어진 동매의 입에도 입을 맞추었다.

 

“애, 애기씨.”

“왜그러는가? 혹여 상이 맘에 안 드는 겐가?”

 

귀끝부터 붉게 변한 동매의 상태를 알면서도 애신은 짓궂게 웃었다. 이리 애신이 갑작스래 다가오면 동매는 그 행동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좋지만 감히 자신이 애신을 만질수는 없어서 이리 뻣뻣해져 귀를 붉히고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리 굳어있음 쓰나. 내 미안하니 오늘은 가만히 있어주지. 하고 싶은 거 뭐든 다 하게.”

“어,찌, 제가, 감히.”

 

이제 동매의 귀를 넘어서 목까지 새빨개졌다. 이런 동매의 반응에 언제나 애신은 짓궂게 동매를 놀렸다. 동매는 애신의 손길에서 벗어나 벌떡 일어났다.

 

“피..피곤하실터인데 얼른 주무시지요.”

 

그러고는 침구가 깔려있는 방으로 손살같이 가버렸다. 애신은 그런 동매의 뒷모습을 귀엽다는 듯 웃으며 보고는 천천히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방안의 불이 꺼지고 나서도 동매의 당황스러운 소리가 몇 번이나 나고서야 방안이 조용해졌다.

 

-

 

옷을 챙겨입고 칼까지 허리춤에 찬 동매와는 다르게 애신의 눈에는 아직 졸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동매는 그런 애신이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들어가서 더 주무시지요.”

 

애신은 반쯤 감긴 눈을 휘어 웃어 보이고는 까치발을 들어 동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동매의 몸이 잠시 굳었다.

 

“잘 다녀오시오. 다치지 말고.”

“이러시면 가지 말라는 뜻으로 들립니다만.”

 

동매는 애신에게 더 바짝 붙어 귀에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빨리 가시오. 기다리지 않소.”

 

애신은 자신의 허리에 감으려는 동매의 팔을 쳐내고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는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동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불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돌아서서 무신회 애들을 이끌고 갔다. 동매와 그 무리들이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다가 애신도 방으로 가서 씻고는 옷을 차려입었다. 동매가 집에 올 때까지 마실이나 나갈 참이었다.

 

꽤나 오랜만의 글로리였지만 겉도 속도 여전했다. 사람들은 북적였고 주인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니. 애신이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히나가 눈웃음으로 맞이해주었다.

 

“오랜만이십니다, 애기씨. 어쩐일로 오셨습니까. 아쉽게도 구동매는 여기에 없답니다.”

“구동매가 일 나간 틈을 타 빈관주인과 놀려고 왔소.”

“이런, 이쪽으로 오시지요.”

 

히나가 먼저 홀의 구석쪽의 벨벳소파로 향하였고 그 뒤를 애신이 따라갔다. 히나는 가배를, 애신은 차를 마셨고 가운데에는 달콤한 다과들이 놓여있었다.

 

“그래서, 어떻습니다. 그 구동매와 같이 사는 것은.”

“생각했던 것과는 꽤나 많이 다르더군. 생각보다 편하고, 생각보다 더 좋네.”

“좋아 보이십니다. 질투 나게.”

 

애신의 입가에 활짝 핀 웃음꽃을 히나가 흘겨보았다. 그리 소소한 이야기가 왔다 갔다 거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둘이었기에 이야깃거리가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많은 손님들이 들어오고 많은 손님들이 나갔다. 올 때 중천에 있었던 해는 천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딸랑-하는 소리에 손님이 또 오셨구나 하였는데 꽤나 낯익은 행색이었다. 푸른 기모노에 검은 하오리. 허리춤의 칼 두 자루. 히나와 눈이 마주치자 동매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처음엔 그런 동매의 반응에 의아했지만 애신쪽을 바라보며 굳은 모습이나 금방이라도 뒷걸음쳐 도망갈 것 같은 모습에 대충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애신은 입구쪽을 등지고 있어서 아직 동매가 들어온지를 몰랐다.

 

“이걸 눈감아줘야 하나..”

“무엇을 말인가?”

 

허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애신은 히나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여즉 굳어있는 동매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는 피가 튀어있었고 어두운 색감의 옷이라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옷의 어깻죽지 부분이 잘린걸 보니 다친 것 같아보였다. 애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동매는 애신의 기세에 한걸음 물러났지만 더 이상 도망갔다간 애신의 기세가 더 무서워질 것 같아 곱게 애신에게 잡혔다.

 

“다친 것이오?”

“제 피 아닙니다.”

“이쪽도?”

 

잘려나간 어깻죽지 부분을 만지니 동매가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뒤로 뺐다. 허나 애신은 잡은 손을 놓지않았다.

 

“당장 치료하러 가세.”

 

애신이 동매의 손목을 잡고는 이끌었다.

 

“제 방으로 가시지요. 이왕이면 빨리 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히나가 자신의 방 쪽을 손짓하며 웃었다. 애신은 실례하겠소. 하며 동매를 이끌고 히나의 방으로 내려갔고 동매는 힘없이 끌려갔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히나는 가벼이 웃고는 방문을 닫았다. 저리 휘둘리는 동매는 언제봐도 신선하고 재밌었다.

 

“벗으시게”

 

애신의 말에 동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애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애신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조용히 하오리를 벗고 기모노도 풀었다. 동매의 상체가 훤히 드러났다. 평소라면 부끄러운 기색이라도 보였을 애신이지만 지금은 동매의 어깨에 난 상처밖에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흔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깨부터 날깨뼈즈음까지. 깊진 않았지만 치료를 안하여 흐른 피가 등줄기를 타고 내린 채 말라있었다. 애신이 심각한 얼굴로 상처를 살폈다.

 

“이 정도면 간단한 치료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히나가 흰 천과 물을 담은 대야와 약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앉으시게. 상처가 깊은 듯 해.”

“그저 스친 상처일 뿐입니다.”

 

동매는 치료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애신은 동매를 끌고 의자에 가 앉히고는 흰 천을 물에 적셨다.

 

“제가 하겠습니다.”

 

애신의 손에서 천을 뺏으려는 동매의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애신은 자신의 손 쪽으로 오는 동매의 손을 탁 쳐내고는 사나운 눈매로 동매를 쳐다보았다.

 

“손도 제대로 안닿을텐데 치료를 어찌 하겠다는겐가. 가만히 앉아있게.”

“허나,”

“씁- 가만히 있으래도.”

 

애신이 천을 물에 적시고 물기를 짜내는 동안 동매는 불편한 기색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 동매의 모습을 히나는 옆에서 웃으며 바라보았다. 애신이 적신 수건으로 상처의 피를 닦아내고 약을 바르는 동안 애신의 손길에 동매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지기만 했다.

 

“다쳐오지 말라고 그리 말했거늘, 어찌 이리 말을 안 듣는단 말인가”

“이건-”

“이러니 내 하루도 마음이 평안할 날이 없네.”

 

애신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을 하였다. 동매가 뭐라 변명이라도 꺼내볼까 하였지만 그것은 애신의 다음 한탄에 묻혀버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애기씨가 고생이 많으시네요.”

“알아주어 고맙소. 이럴 때마다 속이 얼마나 상하는지.”

 

히나가 애신의 편을 들었고. 그에 애신은 히나에게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너무 보살피지 않네. 다치고 나서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항상 괜찮다고만 하고. 애신의 투덜거림은 길어졌다. 동매는 차마 애신에게는 한마디 대꾸도 못한채 그저 애신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히나만 노려보았다.

 

“이런, 무서워라.”

 

히나는 그저 웃으며 가벼히 넘겼지만.

 

그리 치료가 끝나고 동매는 다시 옷을 챙겨입었다. 슬슬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린 이만 가 보겠네.”

“가끔씩 놀러 오십시오.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드릴 테니.”

 

애신이 곱게 웃어 보이며 말하자 히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둘은 글로리에서 나와 진고개로 향했다. 애신이 앞에 가고 동매는 한두 걸음쯤 뒤에 서서 걸었다. 둘 사이에는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다. 그저 스치는 치맛자락의 소리와 두 개의 검이 부딪혀 절그럭거리는 소리만 났다.

 

동매는 애신의 걸음걸이에 맞춰 따라가며 애신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에 금방이라도 삐쭉 튀어나올 듯한 입술은 애신의 기분을 꽤나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화나셨습니까.”

“내가? 내가 어찌하여 그대에게 화를 내겠나.”

 

동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리 말하는 애신의 행동은 누가보아도 화가 난 자의 모습이었다. 이를 어찌 풀어줘야 할까. 애신이 동매에게 화를 낸적은 꽤나 많았다. 물론 언제나 동매가 져주었기에 둘이 싸운적은 딱히 없었다. 아무튼 동매는 애신이 이리 화를 낼 때마다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를 잘 모르겠었다. 그저 잘못했다고 빌어야하려나.

 

“잘못했습니다.”

“...”

“잘못하였습니다, 소인이.”

 

애신은 대꾸도 않고 오히려 걸음걸이만 더욱이 빨라졌다. 금세 진고개에 다 닿았다. 그 좋아하던 사탕이 아기자기 놓여진 제빵소도 눈길 하나 주지않고 지나쳤다. 1층에 들어서니 무신회 아이들 몇몇이 애신에게 인사를 했다. 평소라면 웃으며 고개라도 끄덕여줬을 애신이지만 오늘은 모두 무시하고는 2층으로 쌩하니 올라가버렸다.

 

“오야붕, 무슨 일 있으십니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걸 눈치 챈 유조가 동매에게 물었다.

 

“됐어. 애들 다 데리고 해산해.”

 

인상을 찌푸린 채 손을 휘적거리고는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갔다. 애신은 계속 무언가 분주하다는 듯이 움직였다. 마치 동매에게 말 걸지 말라는 듯. 동매는 애신이 저리 화를 내는 까닭을 몰랐다. 평소에도 종종 다쳐왔지만 이리 화내시지는 않았다. 그저 타박을 조금 하였을 뿐이지. 오늘은 왜 이리도 화가 나신 걸까. 그리 큰 상처도 아니건만.

 

화가 나신 사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웃게만 해드리고 싶은 애기씨가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게 중요하지. 어찌해야 찌푸려진 저 고운 미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까. 자신을 향해 웃어주실까.

 

“애기씨.”

 

동매의 부름에 애신은 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바쁜 듯이 움직였다.

 

“앞으로는 이리 다쳐오지 않겠습니다.”

“허, 안다치는게 아니라 다치고도 나에게 숨기는 것이겠지. 빈관에서 몰래 치료하고.”

 

애신이 차갑게 동매를 쏘아 붙였다. 그리고 동매는 그제서야 애신이 이리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질투 아닌 질투를 어찌 받아들여야할까. 동매는 자신에게 얼굴조차 비춰주지 않는 애신의 뒤로 가 애신을 불렀다. 물론 애신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애기씨.”

“...”

“애기씨..”

 

동매가 애절히 몇 번이나 애신을 부르고 나서야 애신이 고개를 휙 돌리고는 동매를 쏘아보았다.

 

“왜 그러는가.”

“소인이 잘못하였습니다. 애기씨께서 걱정하실까봐 그리하였습니다. 숨겨서라도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

“이 놈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동매가 애신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애신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는 언제나 애기씨를 먼저 생각하고, 애기씨께 먼저 가겠습니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큼..”

 

달콤히 바라보는 동매의 눈빛에 애신의 볼이 달아올랐다. 풀린 것일까. 동매의 눈매가 더욱 휘어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지말게, 내 아직 화가 덜 풀렸어.”

“그럼, 어찌하실 겝니까. 소인이 무엇을 하면 화가 풀리련지요.”

 

동매의 말에 웃음기가 서렸다. 동매가 한 걸음 더 애신에게 다가갔다. 애신은 주춤거리며 뒤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으나 동매가 큰 보폭으로 금세 다시 애신의 곁에 왔다.

 

“그럼 오늘 밤은 애기씨의 화가 풀릴 때까지 아양이나 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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