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유의 관계
그때의 한성에는 유독 환자가 많았다. 약방의 약은 전부 동이 나버렸고, 의원은 하루에 서른 곳이 넘는 기와집과 여염집을 오가며 시침을 해야만 했다. 하루에 놓는 침의 개수만 해도 이백 개가 넘는지라 대장간의 쇳물 또한 식을 틈이 없어, 그 덕에 대장장이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들이 잠 못 이룬 밤을 두 손에 채 꼽기도 전에 사달이 났다. 새로이 쓸 침을 만드는 속도보다 사용한 침을 버리는 속도가 더 빨라 불에 소독하여 달군 침을 다시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생적이지 않음을 의원들 모두가 알고 그러지 말자 권했지만, 환자들은 그 침이라도 좋으니 놓아달라 애원했다.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 어찌 그 청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누군가의 몸을 거쳐온 침이라도 맞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었다.
의원을 불러도 차도가 없어 한숨만 내뱉던 사람들은 소쿠리와 농기구를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무명과 비단이 뒷산을 뒤덮었다. 그들은 까만 고사리와 허연 버섯이 아닌 녹빛 풀을 뿌리째 뽑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 산에서 따온 것을 흙만 털고 씹어먹기도 했고, 가마솥에 펄펄 끓여 우러나온 물로 목욕을 하거나 목을 축이기도 했다. 그러자 새로이 골병에 드는 사람들이 늘었다. 의술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백성들이 약초와 독초를 구분하는 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의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살면서 그렇게 바쁜 날이 없었다. 두손 두발 다 들기보다는 그 전에 두 발로도 침을 놓고 약을 처방하고 싶었다. 여러모로 어수선하고 바쁘고 안타까운 나날들이었다.
그때의 한성에는 유독 ‘총상’ 환자가 많았다. 고애신도 그중 하나였다.
“애기씨께서 심한 열병이 드셨다면서?”
좌판에서 옷감을 고르던 여염집 아낙네가 포목점 주인에게 물었다. 포목점 주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걸 아직도 몰랐어? 저자에 애기씨 가마가 안 보인지도 벌써 열닷새가 지났는데. 이 한성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자네뿐일 걸세.”
“자식새끼가 아파서 드러누웠는데 내가 저자에 어떻게 나와? 그나저나,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오?”
포목점 주인은 째려보는 시선에 잠시 흠칫했다가, 입이 간지러웠는지 이내 자신이 아는 걸 술술 불어댔다.
“말도 마. 요새 어딜 가나 애기씨 건강 걱정하는 사람이 수두룩해. 고열이 어찌나 끓는지 손대면 데일듯하다는데.”
팔려고 늘어놨던 비단보다 부드럽게 술술 잘 풀리던 이야기였다.
“그 정도라고? 참말로 큰일이네. 고사홍 대감님께서 걱정깨나 하시겠어.”
“별로 차도가 없으시다니 그게 제일 큰일이지. 한성에서 어의 빼고 날고 긴다는 의원 전부가 그 집에 들어갔는데 아직 거동을 못 하시는 걸 보면 정말 큰 병에 드신 게야.”
“어휴, 쯧쯧…. 애기씨 딱해서 어떡해.”
아낙네는 품에 애신을 안은 것처럼 비단에 얼굴을 묻고 코를 훌쩍거렸다. 포목점 주인은 아직 값을 치르지도 못한 비단에 분과 눈물이 묻는 것도 모른 채 아낙네의 말에 맞장구쳤다.
“맞아. 한성에 그렇게 딱한 분이 두 분은 안 계시지. 오직 애기씨 뿐이야.”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니건만 어쩐지 기분이 퍽 안 좋았다.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문득 포목점 주인은 좌판을 접고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포목점 주인의 생각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비단을 손에 든 아낙네도 건너편 좌판 주인의 생각도 그러했다. 저잣거리는 알게 모르게 활력을 잃은 사람들만이 있었다. 피로 맺어진 혈연만이 가족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없이 찌푸린 미간과 굳어버린 입매 때문에 인상이 한층 더 나빠진 동매는 게다를 질질 끌며 골목을 이리저리 살폈다. 여기나 저기나 축 처진 놈들만 눈에 들어와 욕지거리가 저절로 나왔다. 텁텁하게 입이 말랐다. 애신의 머리카락 한 올 보지 못한 것도 보름이 지났다.
하루 이틀은 길이 엇갈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워낙 공사다망하신 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흘째 되던 날에는 일본에서 누군가가 저를 찾아와 보지 못하였다.
닷새째 되던 날에는 삶이 야속하여 술잔을 기울였다.
엿새에는 부하들의 등에 피멍이 들고 바닥에 깔아놓은 다다미가 둥그스름하게 패이도록 유도장에 틀어박혀 있었고, 이레에는 수련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손을 베였다. 피가 참으로 많이 났었다. 칼에 베인 아릿한 감각은 오랜만이었다.
여드레가 돼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랫것들 시켜 애신의 행방을 알아보라 명령하는 것보다 안절부절못하며 몸이 단 제가 직접 나서는 걸 택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 애신을 마주칠지 몰라 칼도 쓰지 않고 주먹으로 사람을 치지도 않았는데 애신이 보이지 않았다. 일곱 날이 지났다. 동매는 그동안 제 무능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분이 치밀었으나 풀 곳이 없었고, 애초에 풀고 싶지도 않았다. 부하들에게도, 조선인에게도. 이 분노를 삭여줄 사람은 조선 천지에 단 한 명뿐이었다. 그 한 명이 사라져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광증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척에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손에 닿을 정도로. 그전에 애신을 만나길 소원했다.
어스름히 어둠이 깔렸다. 그것이 화월루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 동매는 아쉬움이 남는 거친 손길로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오늘도 공쳤다. 어제와 다름없이. 발걸음을 되돌려 화월루로 향하다 그만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익숙한 자였다.
“히익! 소, 송구합니다!”
“뭐가.”
동매는 실로 그것이 궁금했다. 어쨌든 자신도 한성에 살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오가며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퇴근하던 사탕 장수가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두 팔을 들어 얼굴과 머리를 감싸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동매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으나 발에 부딪힌 무언가가 앞으로 굴러가 그러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동매는 발끝에서부터 몸이 굳는 기분을 느꼈다. 길바닥에 동매의 게다를 묶어둔 건 머리를 조아린 사탕 장수가 아니었다.
흙바닥에 굴러다니는 여러 빛깔의 사탕이 동매의 눈에 꽂혔다. 질서 없이 떨어진 흰 종이봉투도 있었다. 동매는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포기하고 되돌아가려던 길목에서 벌어진 일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많이 못 팔았나 보네, 오늘은.”
“예, 예?”
동매는 여전히 질겁하고 있는 사탕 장수에게 무심하게 물은 뒤, 무릎을 굽혀 반쯤 앉았다. 흙먼지를 입은 사탕 하나를 집어 들어 그에게 보였다.
“이거 말이야.”
떨어진 사탕을 한 알씩 주워 봉투에 담는 제 모습이 우스웠다. 다른 물건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갔을 테지만 떨어진 것이 사탕이라 어쩔 수 없었다. 팔지도 못한 사탕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쓰레기 상태로 전락하자 울상을 짓던 사탕 장수가 동매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아, 그것이…, 예에. 시전에 사람이 있어야 사탕도 팔리고 하는데, 요즘은 통 사람이 나오지를 않으니까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이유?”
“예―. 요새 한성서 아픈 사람 세는 것보다 안 아프고 건강한 사람 세는 게 더 빠르다지 않습니까. 다들 병간호하느라 바쁜 게지요. 애신 애기씨도 그리되시고, 저기 윤가댁 도련님은―,”
“다시 말해봐.”
사탕 줍던 손길을 멈춘 동매가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이전과 다를 바가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사탕 장수는 원인 모를 소름이 돋았다.
“애기씨가, 뭐?”
소름이 아니라 저를 향한 살의였다.
“애, 애신 애기씨께서 여간 편찮으신 게 아니시라고…. 열병에 크게 드셨답니다. 날고 긴다 하는 의원들이 숱하게 애기씨 댁에 드나들었는데도 보름 동안 차도가 없으시대요. 하, 한성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싸늘한 눈빛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사탕 장수는 급히 말을 돌렸다.
“저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동매는 사탕 장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달렸다. 사탕 장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떨어진 사탕을 주워주길래 조금이라도 마음을 곱게 먹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살벌했고 두려운 존재였다. 사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탕 장수는 흙먼지 묻은 옷을 털지도 못하고 동매의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이 길이 이렇게나 먼 길이었나. 눈 감고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수도 없이 밟아온 길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너무나도 멀었다. 동매는 자조했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데도 이만큼이 걸렸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한들 굳게 닫힌 대문을 열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저 대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리 늦은 시각에,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 문 너머로 향하는 걸 가만두고 볼 수가 없을 듯했다. 애초에 동매는 그들에게 손님이 되지 못했다.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객이었다. 환영받지 못할 존재였다. 조선에서 저를 환영하는 곳은 딱 두 군데였다. 화월루와 빈관. 이곳은 그 둘 중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애신이 머무는 집이었다. 그러니 환영받지 못함을 알았다. 알면서도 이곳으로 달려온 자신을 천치 중의 천치라 여겼다.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다 보니 이곳이었다. 그저…, 있었다.
무엇을 해도도 들어갈 수 없는 사내였다. 그것이 뼈에 사무쳐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삶은 제게 달린 것이 아니었다.
팔짱을 꼈다. 스스로 손을 묶은 것이다. 문을 두드리고 싶지 않았다. 자고 있을 여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길, 몸속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다시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달아오르다 꺼져버리고, 식을라치면 다시 불이 붙었다. 중간이 없었다. 그래서 지나치지도, 아는 채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서 있기를 몇 시진, 닫힌 문이 열렸다. 육중한 문답게 내는 소리도 무거웠다.
“거기 뭣 하러 서 있는가.”
“…….”
“그라고 서 있는다고 들어올 수나 있을 것 같혀?”
동매는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행랑아범이었다.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만.”
“네 시간 동안 말이제?”
동매는 자신이 네 시간 동안 서 있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네 시간 동안 대문 밖에 서 있었다는 걸 행랑아범이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알면 좀 들여보네 주시지요.”
“누구 맘대로?”
“그럼 다시 들어가시든지요.”
“…나도 그러고는 싶은디 말이여.”
행랑아범은 대문 한 쪽을 열어젖힌 채 비켜섰다.
“참말로 그러고 싶은디…. 대감마님께서 보자 하시네.”
동매는 재차 묻지 않았다. 문턱을 넘었다. 곧바로 행랑아범이 길을 잡아주었다. 동매가 그 뒤를 따랐다. 따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가마가 끝이 아니었다는 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게. 동매는 힘준 두 손을 꽉 쥐었다. 그제야 손에 들린 사탕 봉투의 존재를 깨달았다. 처참히 구겨진 봉투는 찢어지지 않은 채 사탕을 안고 있었다.
행랑아범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어둠 사이로 한 인영이 보였다. 행랑아범은 그자에게 자신이 당도했음을 고한 뒤 사라졌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살면서 몇 번 뵐까 말까 한 분이었다. 이리 가까이서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애신의 할아버지였다. 황제의 스승이며 이 나라 최고 사대부 양반이기도 했다.
동매는 몇 걸음 앞으로 향한 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집 안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허락한 장본인이었기에 예를 다했다. 큰 어른은 뒷짐을 진 채 시커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어리석다.”
나지막했으나 힘 있던 목소리는 분명 호통이었다.
“비록 변절자라고는 하나 자네는 우두머리다. 수많은 사내를 이끌며 칼을 쓴다는 자가 어찌 이리도 어리석을 수 있단 말이냐.”
“…….”
동의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장이라 동매는 침묵만을 지켰다. 큰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침묵 속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긴장을 억누르려 손에 칼 손잡이를 쥐려 했으나, 땀에 전 흰 봉투 때문에 잡지 못하였다. 대신 곱게 깎인 주춧돌을 바라보았다.
“내 묻고 싶은 게 있어 자넬 안으로 들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느냐.”
“…답할지 말지는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시선을 끌어올리자 큰 어른과 눈을 마주쳤다.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는 태도에도 큰 어른은 꾸짖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다.
“반가의 여인과 자네가 맺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대신, 많이 배우신 어른답게 말로 찔렀다. 황제의 스승이 아니었다. 지독한 변절자도 가르치는 만인의 스승이었다. 단숨에 대답할 수 없는 무거운 문장으로 동매를 헤집었다. 숨 쉴 조금의 말미가 필요했다. 동매는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고 입을 열었다. 반격했다.
“맺어지기 위해 서 있던 것이 아닙니다.”
언감생심. 감히 바라지도 않았다. 꿈으로 꾸기에도 아까웠지만 그렇다 하여 버릴 수는 없으니 그저 어두운 심연에 던져두고 찾지 않았다. 동매는 진심을 묻을 적 심연 앞에서 토로했던 마지막 문장을 되뇌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
“땅을 밟고 뛰어야 합니다.”
황제의 스승이었다던 어르신에게 아뢰기 송구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문장이었다. 시커먼 연못 속에서도 빛을 내며 제가 여기 있음을 알릴 정도로 늠름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혹, 넘어지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세 살배기 어린 애도 알만한 지식이었는데도, 저한테만큼은 고고했다.
“뭐라도 짚어 크게 다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게 제 진심이었다.
“밟는 것도, 뛰는 것도, 짚는 것도. 닿아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쐐기를 박았다.
“…….”
“그저…, 닿아만 있으시라. 늘 거기 서 있는 것뿐입니다.”
진심을 심연에 묻을 때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생각은 그렇게 처음으로 타인을 마주했다. 동매는 제가 짓밟히든 치워지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를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넘어지려 하는 이를 잡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쓰여도 좋을 것 같은 삶이었다.
바라마지 않던 것은 그토록 소박했다. 제 손으로 이루기 버거웠을 뿐이었다.
어르신은 동매의 말이 끝난 뒤에도 그저 담담하게 누각을 지켰다. 그 사이 달이 기울어 모든 것이 검어졌다. 어르신은 짙은 어둠 속에서 사내의 얼굴을 단번에 찾았다. 형형한 안광이 그 지표였다.
“총상을 입었다.”
애석하게도, 익히 들어오던 열병이 아니었다.
“몇 달간은 제대로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다쳐, 해를 입힌 자가 누구인지 직접 물었네만… 대답하지 않았다.”
방법 찾기에 몰두했으나 새로이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여, 그리움에 죽고 그리움에 사는 이를 안으로 들였다. 이것이 최적의 방법이었길 어르신은 바랐다.
“아이는 안채에 있네. 그리로 가게.”
땅을 박차는 나무신의 딱딱한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은 직감했다. 제 역할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남은 전부는 사내의 몫이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이었으나 몇 달간은 제대로 운신하기 힘들다 할 정도로 다치셨다면 분명. 이 늦은 시각에도 치료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터. 동매는 저 멀리 아른거리는 불빛을 발견했다. 길잡이도 표지판도 없었으나 동매는 확신했다. 저곳이다. 저곳에, 제가 찾아 헤매던 사람이 있을 것이다. 환한 불빛을 향해 가는 길은 어두웠으나, 동매의 마음보다 어둡지 못했다. 눈부심은 과해지는데 마음은 죽도록 어둡고 무거웠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안채 마당의 흙을 게다에 묻혔다. 넘어져도 옷에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곱게 갈린 모래였다. 그것마저 이곳의 주인을 닮았다 느꼈다. 동매는 안채 마룻바닥에 올라가지 않았다. 디딤돌에 놓여있는 신발이 범인이었다. 평소 신는 비단신이나 꽃신이 아닌, 투박한 사내의 신발이었다. 틀림없는 애기씨의 것이었다. 신발은 본래의 색을 잃어버려 거무죽죽하게 퇴색된 색을 띠고 있었다. 그건 또한 틀림없는 피였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로 참을 수 없어져 작게 되뇌었다. …애기씨. 문 너머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도 창호지 너머로 아담한 윤곽이 비추어, 동매는 제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애기씨.”
성대와 혀가 아우성을 쳤다. 여태껏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던 그 말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은 자신을 꾸짖기라도 하듯 요동쳤다. 어째서 이리 늦게 부른 것인지 한탄하듯 부르짖었다.
“애기씨.”
동매는 제 기다림이 모자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여, 바라던 이를 소리 내 불렀다.
“애기씨.”
보름 만에 되찾은 이름이었다.
“애기씨―.”
새롭게 생긴 인영 하나가 있었다. 주변을 향해 손사래 치는 모습도 있었다. 제가 일어나는 걸 말리는 사람들을 물리느라 애기씨께서 드신 손이었다. 동매는 그 몸짓을 두 눈에 아로새겼다. 동공에 화살촉이 박히는 것만 같았다.
“……헛걸음을…, 하였네.”
열 글자도 안 되는 저 말 속에 숨은 약간의 말미가 사내를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애기씨는 알지 못했다.
“할아버님,께서도…, 괜한….”
애기씨의 입에서는 끝맺지도 못한 문장의 마지막 단어가 아닌 탁한 *해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 둘, 그에 기대어 다시 사라진 인영 하나. 애기씨는 그 잠시를 참지 못해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짓입니까.”
당신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보다 먼저,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하는 태도가 역겹고 구역질 났으나 동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하나였다.
“대체 어느 누가…, 감히….”
동매의 말미는 분노에서 비롯돼 아주 붉고 뜨거웠다.
“…돌아가게.”
그런데, 금방이라도 꺼질 실낱같은 저 음성이 동매의 분노보다 강했다. 붉고 뜨거운 그 분노에 애신은 자꾸만 물을 끼얹었다. 동매는 그것이 서러워 소리쳤다.
“애기씨!”
“돌아가래도!”
온몸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 맥없는 손이 놓친 흰 봉투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소리마저 무겁게 들릴 정도로 아득한 밤이었다. 동매는 떨어진 봉투를 바라보았다. 꽉 쥐고 있어 구겨진 입구는 끝끝내 사탕이 흙먼지를 입는 걸 방해했다. 단 한 알의 사탕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왜 저를 발견했는지는 모를 이유였다.
오고 간 건 말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드는 겁니까. 동매는 질문조차 건네지 못해 답도 얻지 못했다. 쉽사리 삭혀지지 않을 분노는 쌓이고 쌓였다.
“아픈 이는, 한 명으로 족하네.”
“그 한 명이 어째서 애기씨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동매의 착각이었다. 쌓인 건 분노가 아니라 혐오였다. 지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저를 향한 순도 높은 혐오였다. 다치는 것도 죽는 것도 전부 제 몫이길 바랐다. 낯게 읊조리는 제 목소리처럼, 제게 허락되는 건 세상의 모든 낮은 것이었으면 했다. 제가 가져, 애기씨에 돌아갈 낮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면 했다.
“내가, 다 나을 때까지…, 이곳에 발걸음하지, 말게.”
도대체 무얼 가질 수 있는 삶이란 말인가. 이곳에 발걸음 할 수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물어야 애기씨를 해한 범인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연쇄적으로 떠오른 질문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운이 좋아 범인을 알아낸다고 한들, 오늘이 아니면 이곳의 문지방은커녕 대문도 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동매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문전박대 그 이상을, 보여…줄테니.”
저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 물을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애기씨와 관련된 선택은 언제나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서 제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아득했다. 정답을 알려주는 이는 없고, 정도를 바로잡아 주는 이도 없었다.
언제나 혼자였다. 늘 그랬듯.
그 집을 빠져나와야 하는 게 동매 뿐인 것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불빛 하나 없이 걸었다. 흔하디흔한 그 달빛도 없던 수라의 밤이었다. 문득, 동매는 손에 든 봉투가 부끄러워졌다. 가던 걸음을 멈춰 봉투를 열고 사탕 한 알을 꺼냈다. 버릴 수 없어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노랗고 붉은 색조차 분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탕을 먹었다. 단맛보다 먼저 까끌까끌한 흙 알갱이가 느껴지는, 사탕이라 부르기조차 뭐한 딱딱한 덩어리였다. 입안을 겉도는 불순물이 동매의 혀를 이리저리 긁어댔다. 역시 제게 달려있는 혀다웠다. 긁혀도 뱉지 못하고, 삼킬 수밖에 없었다. 허락된 건 그것 하나였다. 그러니 달게 감내할 수 있었다.
사탕의 맛은 그 누가 뭐래도 지독하게 달았다. 입안 전체에 쓴맛이 맴돌 정도로.
*해수 : 기침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